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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통일시대

Kim Ryu HyunKim Ryu Hyun

인류 역사상 무력적인 방법이 아니고는 언어가 통일된 역사는 없었으나 문자가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된 역사는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숫자이다. 우리가 아라비아 숫자로 알고 있는 현대 숫자는 사실 아랍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인도의 숫자를 아랍의 상인들에 의해서 세계로 전파되면서 아라비아 숫자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뿐이다. 숫자는 우수한 한 나라의 문자체계로 전 세계를 통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언어는 서로 달라도 같은 숫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UsefulCharts: Writing Systems of the World

문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지역적으로 존재하는데 그것은 음소문자 로마자와 표의문자 한자가 그렇다. 로마가 라틴어를 사용할 2천 년 전 무렵,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국가들은 변변한 문자체계가 없었다. 그래서 로마의 영향을 받으면서 함께 받아들인 로마자가 유럽의 모든 국가의 문자체계가 되었다. 그들은 비록 서로 언어는 달라도 통일된 문자를 로마의 라틴어가 사어가 된 지금까지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은 서양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양에서도 벌어졌다. 중국에서 시작된 한자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변변한 문자체계가 없었던 2천 년 전 무렵에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함께 받아들여졌다. 이후 500년 전 경에는 한국에서 음소문자 한글이 창제되고 일본에서 음절문자 가나가 진화한 것과 같이, 또 다른 나라들이 자체 문자를 제정함으로써 현재는 서로 다른 문자체계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한자는 여전히 한자 문화권을 형성하며 많은 영향력을 아직도 끼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과거 문자체계의 역사를 기반으로 재미있는 미래 문자체계에 대해 상상을 펼쳐본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한글은 한자의 영향을 받아서 로마자와는 달리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가능한 독특한 음소문자이다. 또한 표의문자인 한자와는 다르게 정렬(Sorting)이 가능한 문자체계이며, 외래어를 무제한으로 표현할 수 있는 표음문자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IT가 발전한 현대사회에서 무한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중국의 외래어 표기

서울을 ‘서우얼’로, 이마트를 ‘이마이더’로 표기하는 등 중국의 외래어 표기는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정부 기관에서 표준 외래단어 표기를 선포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한자는 뾰족한 정렬 방법이 없음으로 현재 중국에서는 로마자 병음 표기를 사용하여 정렬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게다가 한자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입력하기도 어려워서 로마자 병음을 입력한 후 한자로 변환을 해야 하는 입력하기 복잡한 문자이기도 하다.

앞에서 한자를 중국어 표기 문자로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크다고 했는데, 로마자를 영어 표기 문자로 사용하는 데는 그러한 불편함이 없을까? 많은 이들이 영어에서 사용하는 로마자는 매우 쉬운 표음문자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영어 단어의 맞춤법(Spelling)을 별도로 외울 필요가 없어야 한다. 영문은 사실 무늬만 표음문자이지 한자와 동일하게 모든 영어 단어의 맞춤법을 무조건 외워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단어의 맞춤법만 외워서 되는 문제가 아니고 영어는 별도로 숙어(Phrase)까지 함께 외우지 않으면 원어민과 원활한 소통 또한 할 수 없다. 이 문제를 바로 잡고자 Dictionary.com 사이트에서는 표음문자 재배열(Phonetic Respelling)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미 보편화된 맞춤법을 바꾸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영어의맞춤법이 이렇게 엉망이 된 데에는 영국 최초의 인쇄출판업자 윌리엄 캑스턴(William Caxton)이 문단의 오른쪽 정렬을 바르게 하려고 임의로 정한 어휘의 맞춤법이 표준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어의 표준 맞춤법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이름에 서명한 것이 20가지 이상의 다른 맞춤법으로 남아있다고도 한다. 한글에서는 하나의 모음이 영문에서는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를 u, o, oo, oe, ue, ew, ou 등으로 표기함). 그리고 한글에서는 하나의 자음이 하나의 소리를 내는 데 비해 영문에서는 하나의 자음이 여러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c’가 ㅋ, ㅅ, ㅆ, ㅈ 등으로 소리남).

중국도 로마도 자신들의 숫자가 이미 존재했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인도의 숫자로 통일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인도의 숫자가 로마의 숫자보다, 그리고 중국의 숫자보다 0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하는 등 월등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문화 대혁명 당시 중국은 자국의 한자를 버리고 로마자로 문자를 교체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그러나 학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간체자를 만들고 로마자를 병음 표기하는 데에 그쳤다.

내가 그 당시 마오쩌둥의 책사였다면 나는 중국에서 간체자와 로마자 병음 표기 대신 한글을 도입하자고 주장했을 것이다. 불과 500년 전까지만 해도 한자를 사용했던 한국이 한자를 기반으로 만든 소리 문자인 한글이야말로 행과 열로 표기할 수 있는 중국에 꼭 맞는 표음문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투자해서 500년 동안 갈고닦은 글꼴을 포함하여 모든 한글 관련 생태계를 보너스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을 것이다. 만약에 그랬다면 한글은 지금의 숫자와 같은 지위를 누리는 세계의 문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꿈은 나의 사치스러운 한몽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나는 여러분에게 상기시켜주고 싶다. 내가 K-pop을 좋아하는 이유도 나는 이들이 현대판 아랍 상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아랍 상인이 인도 숫자를 퍼트린 것처럼, 현재 K-pop은 한글을 전 세계로 퍼트리고 있다. 여러분도 이 점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여 행동하기 바란다.

Florian Coulmas: The Best Writing System in the World

숫자의 통일은 이미 과거에 일어났으므로, 나는 문자의 통일은 우리의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짚고 넘어갈 부분은 이미 사어가 된 라틴어의 로마자나 간체자에 로마자 병음을 병기하는 한자로 통일하지 말고, 세계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우수한 우리의 한글로 통일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독일의 언어학자 플로리안 쿨머스(Florian Coulmas) 교수도 한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명된 문자체계이기 때문에 가장 우수하다고 언급한 것을 위의 동영상 강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UsefulCharts에서 발간한 세계 문자 비교 차트와 영상을 참조하면 한글이 타 문자 대비 얼마나 우수한 문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자와 같은 문화의 특성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아서 탁월한 한글로 통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나의 지론이지만, 아무리 좋아도 가만히 놔두면 되지 않고 누군가는 원인 제공(아랍 상인들이 인도 숫자를 전파한 것처럼)을 하고 있어야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는 과연 현재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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